검증된 실용주의에서, 담대한 에코 포퓰리즘으로의 전환
[녹색정치 리포트] 잉글랜드-웨일스 녹색당, 잭 폴란스키 대표 당선과 전망
임기 1년짜리 대표 선거가 불타오르다
2025년 9월에 치러진 잉글랜드-웨일스 녹색당(Green Party of England and Wales, 이하 영국 녹색당) 대표 선거는 당의 향후 진로를 가늠하는 분수령이었다. 이번 선거는 영국 녹색당이 그간 견지해 온 안정적인 성장을 지향하는 ‘검증된 실용주의’ 노선과 사회 전반의 급진적이고 투쟁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담대한 에코 포퓰리즘(Eco-Populism)’ 노선이 첨예하게 맞붙었다.
영국 녹색당 대표의 임기는 통상 2년이다. 2021년 9월에 공동 대표로 취임한 칼라 데니어(Carla Denyer)와 아드리안 램지(Adrian Ramsay)는 당을 “강력한 선거 세력”으로 만들겠다고 천명했으며, 실제로 그들의 재임 동안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승리하며 의석수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영국 녹색당은 2023년 가을 전당대회에서 당력을 총선에 집중하기 위해 차기 당 대표 선거를 총선 이후로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이어진 2024년 7월, 영국 총선에서 목표했던 대로 역대 최다인 4석의 하원 의석을 얻는 데 성공했다. 총선 이후 치러진 2025년 당 대표 선거는 기존의 2년 임기 사이클을 다시 맞추기 위해 그 임기가 1년으로, 한시적으로 제한되었다. 이 임기 1년짜리 당 대표 선거가 이토록 뜨겁게 불타오를 줄 누가 예상했을까.

(왼쪽부터) 엘리 초운스와 아드리안 램지 (사진: Bright Green)
영국 녹색당의 대표 후보는 동일 성별이 아닌 두 명의 공동 후보로 출마하거나, 혹은 단독으로 출마할 수 있다. 직전 공동 대표였던 칼라 데니어가 지역구 의원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연임을 포기한다고 발표함에 따라, 아드리안 램지는 또 다른 하원의원인 엘리 초운스(Ellie Chowns)와 함께 새로운 팀을 구성하여 출마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총선에서 보수당의 텃밭이었던 농촌 지역구인 웨이브니 밸리(램지 지역구)와 노스 헤리퍼드셔(초운스 지역구)에서 승리하며 당의 성공을 이끈 검증된 전문가로 평가받았다.

잭 폴란스키 (사진: Sopa Images/Alamy)
그러나 이들보다 먼저 당 대표 선거 출마를 밝힌 사람은 런던 의회 의원이자 당 부대표였던 잭 폴란스키(Zack Polanski)였다. 유대인, 게이, 비건, 전직 심리치료사이자 배우라는 배경을 가진 그는, 가디언(The Guardian)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출마를 전격적으로 선언하며 당 지도부를 놀라게 했다. 그의 출마 선언은 당 일부에서는 “적대적 탈취(Hostile Takeover)”라고 비난할 정도로 파격적이었으며, 선거판을 뒤흔들어 놓았다.
램지-초운스 팀은 “우리는 함께 승리한다(Together We Win)”라는 구호 아래, 자신들이 이룬 승리의 경험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그들은 “정치적 성공은 마법이 아니라 현실적인 캠페인 관리에 달려 있다”라면서, 당이 지방의회와 하원에서 의석을 확대하는 데 성공했던 ‘Target to Win(TTW)’ 전략을 더 심화해야 하며, 이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것은 검증된 실무 경험과 모금 능력을 갖춘 자신들이라고 역설했다. 램지-초운스 팀의 목표는 현실 정치의 중심인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에서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점진적인 변화를 이끄는 것이었다. 이들은 소선거구 중심의 단순다수대표제의 현실을 지적하며, 폴란스키의 급진적인 방식은 중도 유권자를 멀어지게 하여 당의 넓어진 지지 기반을 좁혀, 당을 다시 ‘무의미한 존재(meaningless)’로 만들 것이라 경고했다.
반면, 잭 폴란스키는 “지금, 담대한 리더십(Bold Leadership, Now)”이라는 구호 아래, 에코 포퓰리즘을 전면에 내세웠다. 에코 포퓰리즘(Eco-Populism)은 환경 문제와 경제 불평등 문제를 연결하여 기득권 엘리트에 반대하며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치 전략이다. 그는 또한 당이 더 이상 느린 성장에 만족할 수 없으며, 정치에 등을 돌린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활동가들을 동원할 수 있는 대중적 얼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폴란스키는 특히 나이절 패라지(Nigel Farage)의 개혁 영국당(Reform UK)에 맞서기 위한 진정한 대안으로써 광범위한 대중 운동을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패라지는 브렉시트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그를 중심으로 하는 개혁 영국당은 반이민, 감세, 기후정책 폐기 등을 주장하며 노동당과 보수당 기득권층을 비판함으로써 양당을 제치고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폴란스키는 램지와 초운스이 노선이 자칫 점진주의와 타협에 머물러 기득권 정당과 차별성을 잃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임기 1년짜리 대표 선거의 열기는 이렇게 고조되었다. 양측의 본질적인 공약 차이는 크지 않다는 전제 아래, 누구에게 어떻게 어필할 것인지에 관한 스타일에 초점이 맞춰졌고, 이는 두 진영 간의 긴장감은 끌어올렸다. 램지-초운스 지지자들은 폴란스키 지지자들로부터 “조직적이고 끔찍한” 온라인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폴란스키 측은 램지가 공동 라디오 인터뷰에서 폴란스키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답변을 거부한 것을 두고 비난했다.
선거가 진행되며 당 안팎에서는 폴란스키의 우세가 점쳐지기 시작했다. 램지-초운스 팀은 경선이 박빙임을 강조하려 애썼으나, 대세가 기울고 있었다. 결국 선거는 예상을 뛰어넘는 잭 폴란스키의 압도적인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잭 폴란스키는 84.1%라는 경이적인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었다(폴란스키 20,411표, 84.1% / 램지-초운스 3,705표, 15.3%). 당의 현역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압도적인 대승이었고, 폴란스키 자신조차도 자신의 (현재까지의) 최대 정치적 업적으로 이 승리를 꼽을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영국 녹색당의 다수 당원이, 그동안의 ‘검증된 실용주의’ 노선보다는, 총선 이후의 정치 지형에서 당의 목소리를 극대화하고 사회적 동력을 끌어들이려는 ‘담대한 에코 포퓰리즘’ 노선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음이 확인됐다. 그리고 이 선택은 유례없는 현상으로 연결되었다.
폴란스키 급증(Polanski Surge)
잭 폴란스키의 압도적인 당선은 단순한 지도자 교체를 넘어 당의 정책 노선과 대중적 인식에 중대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당원들이 ‘담대한 에코 포퓰리즘’ 노선에 전폭적으로 투표했음을 확인한 직후, 영국 녹색당은 이른바 ‘폴란스키 급증(Polanski Surge)’이라고 불릴 만한 유례없는 성장세를 경험하게 되었다.
잭 폴란스키의 취임 연설은 노동당과의 전면적인 대결을 선포하는 장이었다. 그는 키어 스타머의 노동당을 향해 “지역사회를 보호하고 급진적 변화를 불러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자신의 정당과 유권자뿐 아니라 지역사회를 배신했다”라고 맹비난하며, “우리는 당신들을 대체하기 위해 여기 있다(We are here to replace you)”라고 선언했다.
특히 10월 2일 첫 당 대회 연설에서 자신의 에코 포퓰리즘을 구체화하며 ‘극심한 부에 물든 정치 계층’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영국의 문제가 “긴축 정책과 민영화에 기반한 경제 모델에 뿌리를 두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즉, 부유층이 권력과 부를 독차지함으로써 노숙자 증가(2010년 이후 164% 증가), 세입자 위기, 수도 회사의 하수 방류 및 민영화 프리미엄(가구당 연 250파운드 추가 부담) 등 일상적인 고통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 대회에서 연설하는 잭 폴란스키 대표 (사진: Bright Green)
이에 맞서 영국 녹색당이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하고, 영국을 착취하는 행태를 종식할 것”임을 선언하며, “변화가 필요하며, 이제는 되찾을 때(Things must change – and friends it is time to take it back)”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설파하여 지지층을 끌어들였다.
이에 힘입어 녹색당의 당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폴란스키의 당선 직후 68,500명에 도달했으며, 증가세가 지속돼 2025년 12월에는 무려 180,000명이 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보수당(12만 3천 명)과 자유민주당(8만 3,174명)을 모두 앞지르며 당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된 것이다. 폴란스키는 이를 두고 “기존의 양당 체제가 무너졌음을 보여주며, 국민이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잉글랜드-웨일스 녹색당 당원수 변화(wikipedia 및 언론 보도를 참고로 재구성) ⓒ녹색정치연구소 박제민
지지율 변화는 더 극적이다. 폴란스키 취임 직전 약 10% 내외를 기록하던 전국 지지율은 몇 달 만에, 눈에 띄게 상승하여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2025년 11월 초 ‘파인드 아웃 나우(Find Out Now)’의 여론조사에서 18%를 기록하며 노동당(16%)과 보수당(15%)을 앞지르는 이례적인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ITV 청년층 여론조사에서는 18~25세 청년층에서의 지지율은 폴란스키 취임 이후 32%로 두 배 가까이 상승하여 이 연령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당이 되었다. 이러한 지지율 상승은 주로 노동당에 실망한 좌파 유권자들과 젊고 고학력의 도시 거주민이 녹색당으로 대거 유입된 결과로 보인다.

파인드 아웃 나우(Find Out Now) 투표 의향 조사, X 화면 캡처
성공할 수 있을까?
잭 폴란스키 대표의 당선으로 촉발된 ‘폴란스키 급증’ 현상은 영국 녹색당에 전례 없는 활력과 대중적 동력을 불어넣었지만, 동시에 1년이란 짧은 임기 동안 돌파해야 할 내부의 긴장과 외부의 도전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영국 녹색당이 ‘담대한 에코 포퓰리즘’ 노선을 지속 가능한 정치적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지는 다음의 세 가지 과제를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달려 있다.
1) 소선거구제-단순다수대표제라는 장벽
영국 하원의 선거제도인 소선거구 중심의 단순다수대표제는 1표라도 많이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구조다. 선거제도는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영국 녹색당의 전략과 성장에 가장 큰 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다. 전국 지지율이 18%에 달하더라도, 소선거구제에서 지역구 표가 분산되면 의석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폴란스키의 경쟁자였던 램지-초운스 팀이 안정적인 성장을 지향하는 ‘검증된 실용주의’ 노선과 ‘Target to Win(TTW)’ 전략을 강조하며 농촌 등에서 지역구 의석을 확보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였다.
폴란스키의 급진적인 접근 방식은 어렵게 확보한 농촌 지역구 의석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내부적 우려를 낳았다. 이미 2024년 총선 이후 영국 녹색당은 농촌과 도시의 ‘유권자 연합’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폴란스키는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은 임기 동안, 폭발적인 지지율을 실질적인 지역구 경쟁력으로 연결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
2) 경쟁 정당, ‘유어 파티(Your Party)’
폴란스키의 당선은 전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과 자라 술타나(Zarah Sultana)가 창당한 새로운 좌파 정당, 이제는 공식 명칭이 된 ‘유어 파티(Your Party)’와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낳았다. 코빈은 폴란스키의 당선을 두고 “놀라운 승리”라며 축하했고, 폴란스키도 경선의 경쟁자들과 달리 “선거연합을 논의하기에는 이르지만, 실패한 노동당 정부에 도전하고 파시즘과 극우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든” 협력하고 싶다며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경쟁 정당의 존재는 본질적으로 부담과 긴장일 것이다. 영국 녹색당의 새로운 지지층이 노동당에 환멸을 느낀 좌파 성향의 유권자들인 만큼, 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두 당이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2025년 10월, 글래스고의 스코틀랜드 녹색당 소속 시의원 3명이 ‘유어 파티’로 이적한 것은, 이 경쟁 정당이 녹색당의 또 다른 강경 좌파 세력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다.
물론 양측이 협력하여 ‘녹색 좌파’ 연합을 구축한다면 강한 잠재력을 갖게 되겠지만, 영국 녹색당 안에는 코빈-술타나와 협력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당원들이 남아 있다. 또한, 앞서 지적한 선거제도와 관련해서 폴란스키는 비례대표제를 강력히 지지하지만, 지역구에서 잔뼈가 굵어 무소속으로도 충분히 당선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코빈은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인 점도 부담이다.

(왼쪽부터) ‘유어 파티’를 창당한 제러미 코빈과 자라 술타나 (사진: BBC)
3) 그리고… 나이절 패라지!
폴란스키의 성공은 그가 나이절 패라지의 극우 포퓰리즘에 맞서, 에코 포퓰리즘이라는 대항 개념을 제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패라지의 개혁 영국당을 “사기꾼”이라고 비난하며, 영국 녹색당이야말로 환경과 사회 정의를 모두 포용하는 진정한 대중적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폴란스키의 에코 포퓰리즘 전략은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폴란스키는 선거 운동 기간에 당원들이 투표로 결정하지 않은 정책, 즉 NATO 탈퇴 고려와 유럽 동맹국과의 방위 협력 강화를 제안하며 당 안팎의 논란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그는 당선 후에도 입장을 굽히지 않으며, 논란을 회피하기보다 정면 돌파하려 했다. “담대한 리더십(Bold Leadership)”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개혁 영국당, 나이절 패라지 대표 (사진: BBC)
* * *
잭 폴란스키의 당선과 ‘담대한 에코 포퓰리즘’으로의 전환은 분명 영국 녹색당 당원들의 선택이다. 이로써 폴란스키는 하원의원이 아닌 당 대표로서 4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웨스트민스터 원내 그룹을 이끌고, 불리한 선거제도를 극복하며, 경쟁 정당인 ‘유어 파티’와 윈-윈(Win-Win)의 관계를 설정하고, 기존·신규·잠재 유권자의 지지를 동시에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실제로 나이절 패라지를 굴복시키는 과제를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책임에 올라섰다. 이미 그는 다음 총선에서 런던 지역구에 도전할 뜻을 밝혔다. 1년의 임기는 짧지만, 폴란스키가 이 1년 동안만 대표직을 맡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
- 박제민 연구원(greenpolitics.kr@gmail.com)
참고문헌
Brian Wheeler, “New Green leader Polanski vows to 'replace' Starmer's Labour”, BBC, 2025.09.02.
Chris Jarvis, "Zack Polanski delivers first speech to Green Party conference as the party’s new leadership", Bright Green, 2025.10.03.
Chris Jarvis, “Green Party membership hits 150,000”, Bright Green, 2025.10.30.
Henry Moore, “Labour falls to fourth in damning new poll as Reform rise continues and Greens soar”, LBC, 2025.11.07.
Jonathan Essex, “Why Zack Polanski should be the next Green Party leader”, Bright Green, 2025.08.17.
Lewis Denison, "Greens' support from young people doubles while Labour's collapses, ITV poll finds", ITV, 2025.11.11.
Peter Walker, “Zack Polanski’s ‘eco-populism’ could put voters off Greens, opponents say”, The Guardian, 2025.07.30.
Peter Walker, “Zack Polanski pulling away in race to be party leader, senior Greens believe”, The Guardian, 2025.08.17.
Unknown, "Green defectors become Your Party's first Scottish councillors", BBC, 2025.10.24.
Zoe Nicholson, “Ellie and Adrian aren’t offering magical thinking. They’re offering a strategy that’s proven to work.”, Bright Green, 2025-08.01.
검증된 실용주의에서, 담대한 에코 포퓰리즘으로의 전환
[녹색정치 리포트] 잉글랜드-웨일스 녹색당, 잭 폴란스키 대표 당선과 전망
임기 1년짜리 대표 선거가 불타오르다
2025년 9월에 치러진 잉글랜드-웨일스 녹색당(Green Party of England and Wales, 이하 영국 녹색당) 대표 선거는 당의 향후 진로를 가늠하는 분수령이었다. 이번 선거는 영국 녹색당이 그간 견지해 온 안정적인 성장을 지향하는 ‘검증된 실용주의’ 노선과 사회 전반의 급진적이고 투쟁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담대한 에코 포퓰리즘(Eco-Populism)’ 노선이 첨예하게 맞붙었다.
영국 녹색당 대표의 임기는 통상 2년이다. 2021년 9월에 공동 대표로 취임한 칼라 데니어(Carla Denyer)와 아드리안 램지(Adrian Ramsay)는 당을 “강력한 선거 세력”으로 만들겠다고 천명했으며, 실제로 그들의 재임 동안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승리하며 의석수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영국 녹색당은 2023년 가을 전당대회에서 당력을 총선에 집중하기 위해 차기 당 대표 선거를 총선 이후로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이어진 2024년 7월, 영국 총선에서 목표했던 대로 역대 최다인 4석의 하원 의석을 얻는 데 성공했다. 총선 이후 치러진 2025년 당 대표 선거는 기존의 2년 임기 사이클을 다시 맞추기 위해 그 임기가 1년으로, 한시적으로 제한되었다. 이 임기 1년짜리 당 대표 선거가 이토록 뜨겁게 불타오를 줄 누가 예상했을까.
(왼쪽부터) 엘리 초운스와 아드리안 램지 (사진: Bright Green)
영국 녹색당의 대표 후보는 동일 성별이 아닌 두 명의 공동 후보로 출마하거나, 혹은 단독으로 출마할 수 있다. 직전 공동 대표였던 칼라 데니어가 지역구 의원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연임을 포기한다고 발표함에 따라, 아드리안 램지는 또 다른 하원의원인 엘리 초운스(Ellie Chowns)와 함께 새로운 팀을 구성하여 출마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총선에서 보수당의 텃밭이었던 농촌 지역구인 웨이브니 밸리(램지 지역구)와 노스 헤리퍼드셔(초운스 지역구)에서 승리하며 당의 성공을 이끈 검증된 전문가로 평가받았다.
잭 폴란스키 (사진: Sopa Images/Alamy)
그러나 이들보다 먼저 당 대표 선거 출마를 밝힌 사람은 런던 의회 의원이자 당 부대표였던 잭 폴란스키(Zack Polanski)였다. 유대인, 게이, 비건, 전직 심리치료사이자 배우라는 배경을 가진 그는, 가디언(The Guardian)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출마를 전격적으로 선언하며 당 지도부를 놀라게 했다. 그의 출마 선언은 당 일부에서는 “적대적 탈취(Hostile Takeover)”라고 비난할 정도로 파격적이었으며, 선거판을 뒤흔들어 놓았다.
램지-초운스 팀은 “우리는 함께 승리한다(Together We Win)”라는 구호 아래, 자신들이 이룬 승리의 경험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그들은 “정치적 성공은 마법이 아니라 현실적인 캠페인 관리에 달려 있다”라면서, 당이 지방의회와 하원에서 의석을 확대하는 데 성공했던 ‘Target to Win(TTW)’ 전략을 더 심화해야 하며, 이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것은 검증된 실무 경험과 모금 능력을 갖춘 자신들이라고 역설했다. 램지-초운스 팀의 목표는 현실 정치의 중심인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에서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점진적인 변화를 이끄는 것이었다. 이들은 소선거구 중심의 단순다수대표제의 현실을 지적하며, 폴란스키의 급진적인 방식은 중도 유권자를 멀어지게 하여 당의 넓어진 지지 기반을 좁혀, 당을 다시 ‘무의미한 존재(meaningless)’로 만들 것이라 경고했다.
반면, 잭 폴란스키는 “지금, 담대한 리더십(Bold Leadership, Now)”이라는 구호 아래, 에코 포퓰리즘을 전면에 내세웠다. 에코 포퓰리즘(Eco-Populism)은 환경 문제와 경제 불평등 문제를 연결하여 기득권 엘리트에 반대하며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치 전략이다. 그는 또한 당이 더 이상 느린 성장에 만족할 수 없으며, 정치에 등을 돌린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활동가들을 동원할 수 있는 대중적 얼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폴란스키는 특히 나이절 패라지(Nigel Farage)의 개혁 영국당(Reform UK)에 맞서기 위한 진정한 대안으로써 광범위한 대중 운동을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패라지는 브렉시트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그를 중심으로 하는 개혁 영국당은 반이민, 감세, 기후정책 폐기 등을 주장하며 노동당과 보수당 기득권층을 비판함으로써 양당을 제치고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폴란스키는 램지와 초운스이 노선이 자칫 점진주의와 타협에 머물러 기득권 정당과 차별성을 잃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임기 1년짜리 대표 선거의 열기는 이렇게 고조되었다. 양측의 본질적인 공약 차이는 크지 않다는 전제 아래, 누구에게 어떻게 어필할 것인지에 관한 스타일에 초점이 맞춰졌고, 이는 두 진영 간의 긴장감은 끌어올렸다. 램지-초운스 지지자들은 폴란스키 지지자들로부터 “조직적이고 끔찍한” 온라인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폴란스키 측은 램지가 공동 라디오 인터뷰에서 폴란스키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답변을 거부한 것을 두고 비난했다.
선거가 진행되며 당 안팎에서는 폴란스키의 우세가 점쳐지기 시작했다. 램지-초운스 팀은 경선이 박빙임을 강조하려 애썼으나, 대세가 기울고 있었다. 결국 선거는 예상을 뛰어넘는 잭 폴란스키의 압도적인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잭 폴란스키는 84.1%라는 경이적인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었다(폴란스키 20,411표, 84.1% / 램지-초운스 3,705표, 15.3%). 당의 현역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압도적인 대승이었고, 폴란스키 자신조차도 자신의 (현재까지의) 최대 정치적 업적으로 이 승리를 꼽을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영국 녹색당의 다수 당원이, 그동안의 ‘검증된 실용주의’ 노선보다는, 총선 이후의 정치 지형에서 당의 목소리를 극대화하고 사회적 동력을 끌어들이려는 ‘담대한 에코 포퓰리즘’ 노선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음이 확인됐다. 그리고 이 선택은 유례없는 현상으로 연결되었다.
폴란스키 급증(Polanski Surge)
잭 폴란스키의 압도적인 당선은 단순한 지도자 교체를 넘어 당의 정책 노선과 대중적 인식에 중대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당원들이 ‘담대한 에코 포퓰리즘’ 노선에 전폭적으로 투표했음을 확인한 직후, 영국 녹색당은 이른바 ‘폴란스키 급증(Polanski Surge)’이라고 불릴 만한 유례없는 성장세를 경험하게 되었다.
잭 폴란스키의 취임 연설은 노동당과의 전면적인 대결을 선포하는 장이었다. 그는 키어 스타머의 노동당을 향해 “지역사회를 보호하고 급진적 변화를 불러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자신의 정당과 유권자뿐 아니라 지역사회를 배신했다”라고 맹비난하며, “우리는 당신들을 대체하기 위해 여기 있다(We are here to replace you)”라고 선언했다.
특히 10월 2일 첫 당 대회 연설에서 자신의 에코 포퓰리즘을 구체화하며 ‘극심한 부에 물든 정치 계층’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영국의 문제가 “긴축 정책과 민영화에 기반한 경제 모델에 뿌리를 두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즉, 부유층이 권력과 부를 독차지함으로써 노숙자 증가(2010년 이후 164% 증가), 세입자 위기, 수도 회사의 하수 방류 및 민영화 프리미엄(가구당 연 250파운드 추가 부담) 등 일상적인 고통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 대회에서 연설하는 잭 폴란스키 대표 (사진: Bright Green)
이에 맞서 영국 녹색당이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하고, 영국을 착취하는 행태를 종식할 것”임을 선언하며, “변화가 필요하며, 이제는 되찾을 때(Things must change – and friends it is time to take it back)”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설파하여 지지층을 끌어들였다.
이에 힘입어 녹색당의 당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폴란스키의 당선 직후 68,500명에 도달했으며, 증가세가 지속돼 2025년 12월에는 무려 180,000명이 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보수당(12만 3천 명)과 자유민주당(8만 3,174명)을 모두 앞지르며 당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된 것이다. 폴란스키는 이를 두고 “기존의 양당 체제가 무너졌음을 보여주며, 국민이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잉글랜드-웨일스 녹색당 당원수 변화(wikipedia 및 언론 보도를 참고로 재구성) ⓒ녹색정치연구소 박제민
지지율 변화는 더 극적이다. 폴란스키 취임 직전 약 10% 내외를 기록하던 전국 지지율은 몇 달 만에, 눈에 띄게 상승하여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2025년 11월 초 ‘파인드 아웃 나우(Find Out Now)’의 여론조사에서 18%를 기록하며 노동당(16%)과 보수당(15%)을 앞지르는 이례적인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ITV 청년층 여론조사에서는 18~25세 청년층에서의 지지율은 폴란스키 취임 이후 32%로 두 배 가까이 상승하여 이 연령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당이 되었다. 이러한 지지율 상승은 주로 노동당에 실망한 좌파 유권자들과 젊고 고학력의 도시 거주민이 녹색당으로 대거 유입된 결과로 보인다.
파인드 아웃 나우(Find Out Now) 투표 의향 조사, X 화면 캡처
성공할 수 있을까?
잭 폴란스키 대표의 당선으로 촉발된 ‘폴란스키 급증’ 현상은 영국 녹색당에 전례 없는 활력과 대중적 동력을 불어넣었지만, 동시에 1년이란 짧은 임기 동안 돌파해야 할 내부의 긴장과 외부의 도전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영국 녹색당이 ‘담대한 에코 포퓰리즘’ 노선을 지속 가능한 정치적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지는 다음의 세 가지 과제를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달려 있다.
1) 소선거구제-단순다수대표제라는 장벽
영국 하원의 선거제도인 소선거구 중심의 단순다수대표제는 1표라도 많이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구조다. 선거제도는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영국 녹색당의 전략과 성장에 가장 큰 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다. 전국 지지율이 18%에 달하더라도, 소선거구제에서 지역구 표가 분산되면 의석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폴란스키의 경쟁자였던 램지-초운스 팀이 안정적인 성장을 지향하는 ‘검증된 실용주의’ 노선과 ‘Target to Win(TTW)’ 전략을 강조하며 농촌 등에서 지역구 의석을 확보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였다.
폴란스키의 급진적인 접근 방식은 어렵게 확보한 농촌 지역구 의석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내부적 우려를 낳았다. 이미 2024년 총선 이후 영국 녹색당은 농촌과 도시의 ‘유권자 연합’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폴란스키는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은 임기 동안, 폭발적인 지지율을 실질적인 지역구 경쟁력으로 연결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
2) 경쟁 정당, ‘유어 파티(Your Party)’
폴란스키의 당선은 전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과 자라 술타나(Zarah Sultana)가 창당한 새로운 좌파 정당, 이제는 공식 명칭이 된 ‘유어 파티(Your Party)’와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낳았다. 코빈은 폴란스키의 당선을 두고 “놀라운 승리”라며 축하했고, 폴란스키도 경선의 경쟁자들과 달리 “선거연합을 논의하기에는 이르지만, 실패한 노동당 정부에 도전하고 파시즘과 극우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든” 협력하고 싶다며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경쟁 정당의 존재는 본질적으로 부담과 긴장일 것이다. 영국 녹색당의 새로운 지지층이 노동당에 환멸을 느낀 좌파 성향의 유권자들인 만큼, 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두 당이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2025년 10월, 글래스고의 스코틀랜드 녹색당 소속 시의원 3명이 ‘유어 파티’로 이적한 것은, 이 경쟁 정당이 녹색당의 또 다른 강경 좌파 세력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다.
물론 양측이 협력하여 ‘녹색 좌파’ 연합을 구축한다면 강한 잠재력을 갖게 되겠지만, 영국 녹색당 안에는 코빈-술타나와 협력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당원들이 남아 있다. 또한, 앞서 지적한 선거제도와 관련해서 폴란스키는 비례대표제를 강력히 지지하지만, 지역구에서 잔뼈가 굵어 무소속으로도 충분히 당선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코빈은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인 점도 부담이다.
(왼쪽부터) ‘유어 파티’를 창당한 제러미 코빈과 자라 술타나 (사진: BBC)
3) 그리고… 나이절 패라지!
폴란스키의 성공은 그가 나이절 패라지의 극우 포퓰리즘에 맞서, 에코 포퓰리즘이라는 대항 개념을 제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패라지의 개혁 영국당을 “사기꾼”이라고 비난하며, 영국 녹색당이야말로 환경과 사회 정의를 모두 포용하는 진정한 대중적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폴란스키의 에코 포퓰리즘 전략은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폴란스키는 선거 운동 기간에 당원들이 투표로 결정하지 않은 정책, 즉 NATO 탈퇴 고려와 유럽 동맹국과의 방위 협력 강화를 제안하며 당 안팎의 논란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그는 당선 후에도 입장을 굽히지 않으며, 논란을 회피하기보다 정면 돌파하려 했다. “담대한 리더십(Bold Leadership)”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개혁 영국당, 나이절 패라지 대표 (사진: BBC)
* * *
잭 폴란스키의 당선과 ‘담대한 에코 포퓰리즘’으로의 전환은 분명 영국 녹색당 당원들의 선택이다. 이로써 폴란스키는 하원의원이 아닌 당 대표로서 4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웨스트민스터 원내 그룹을 이끌고, 불리한 선거제도를 극복하며, 경쟁 정당인 ‘유어 파티’와 윈-윈(Win-Win)의 관계를 설정하고, 기존·신규·잠재 유권자의 지지를 동시에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실제로 나이절 패라지를 굴복시키는 과제를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책임에 올라섰다. 이미 그는 다음 총선에서 런던 지역구에 도전할 뜻을 밝혔다. 1년의 임기는 짧지만, 폴란스키가 이 1년 동안만 대표직을 맡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
- 박제민 연구원(greenpolitics.kr@gmail.com)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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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Moore, “Labour falls to fourth in damning new poll as Reform rise continues and Greens soar”, LBC, 2025.11.07.
Jonathan Essex, “Why Zack Polanski should be the next Green Party leader”, Bright Green, 2025.08.17.
Lewis Denison, "Greens' support from young people doubles while Labour's collapses, ITV poll finds", ITV, 2025.11.11.
Peter Walker, “Zack Polanski’s ‘eco-populism’ could put voters off Greens, opponents say”, The Guardian, 2025.07.30.
Peter Walker, “Zack Polanski pulling away in race to be party leader, senior Greens believe”, The Guardian, 2025.08.17.
Unknown, "Green defectors become Your Party's first Scottish councillors", BBC, 2025.10.24.
Zoe Nicholson, “Ellie and Adrian aren’t offering magical thinking. They’re offering a strategy that’s proven to work.”, Bright Green, 2025-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