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라는 거짓말? 기후위기를 걱정한다는 거짓말?
[녹색정치리포트] 기후유권자의 존재와 부재: 기후는 왜 투표가 되지 못하는가
기후위기라는 거짓말? – 낡은 부정론의 부활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유럽 곳곳에서 극우정당의 약진함에 따라, 낡은 ‘기후위기 부정론’이 되살아나고 있다. 트럼프는 2025년 9월 24일 유엔(United Nations, UN) 총회 연설에서 “기후 위기는 세계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 Afd)의 알리스 바이델(Alice Weidel) 대표는 독일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두고 “점진적인 경제적 자살”이라고 비난하며 핵발전소 재가동을 요구했고, 베아트릭스 폰 슈토르히(Beatrix von Storch) 부대표는 “우리는 기후도, 전쟁도 관심 없다”라며 자국 우선주의에 따라 국제적인 기후협약을 무시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영국의 극우정당인 개혁영국당(Reform UK)의 나이절 패라지(Nigel Farage) 대표는 “넷제로1의 광기를 끝낼 시간”이라며 기후정책 반대운동을 브렉시트(Brexit)2와 같은 대중운동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고, 리처드 타이스(Richard Tais) 부대표는 “기후위기에 인간의 영향은 매우 적다”라고 주장했다.
1. 넷제로(Net-Zero): 온실가스의 배출량과 흡수량을 동일하게 만들어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개념이다.
2. 영국을 의미하는 Britain과 탈출을 의미하는 Exit의 합성어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한다. 현지시간 2016년 6월 23일, 영국은 국민투표를 통해 투표율 72.2%, 찬성률 51.9%로 유럽연합을 탈퇴했다.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알리스 바이델 독일 Afd 대표,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 (출처: google CCL image)
과학자들의 진술은 다르다. IPCC3의 제6차 보고서는 인간의 활동을 통해 배출된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를 초래했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Unequivocal)”라고 명시했다. 심지어 미국 연방정부가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국가기후평가(National Climate Assessment)’ 보고서도 “온실가스 배출을 통한 인간 활동이 지구 온난화를 명백히 초래했다”라고 결론짓고 있다. 기후위기를 둘러싼 논쟁에서 정치인의 선전을 들을지, 과학자의 판단을 따를지 결정하는 것은 절대 어렵지 않다.
3.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유엔 산하 국제기구로,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를 평가하고 영향 및 대응 방안에 대한 종합 보고서를 발간한다.
극우정치는 왜 기후위기를 부정하고 공격하는 것일까? 두말할 것 없이 자신들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서다.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에너지 가격 상승을 서민의 경제적 고통으로 치환하여 분노를 유발하고, 에너지전환 정책이 자국의 산업 경쟁력과 자국민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논리를 앞세워 지지층을 결집하는 것이다. 결국 기후위기를 엘리트들이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조작한 ‘사기’나 ‘광기’로 규정함으로써 대중들의 반엘리트 정서를 자극한다. 그 이면에는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화석연료 업계 및 자본과의 공고한 카르텔도 작동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서구의 기후부정론이 약간 변주한 형태로 나타난다. 한국의 지형에는 재생에너지가 맞지 않다거나, 한국이 아무리 온실가스를 줄여도 중국 때문에 소용이 없다는 주장 등이다. 기후위기를 정면으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지리적 적합성과 한계성을 부각하며 기후위기 대응을 가로막고 화석연료 체제를 지속시키겠다는 것이다.4 다행스럽게도 한국의 시민들은 이런 선전에 흔들리고 있지 않다. 여러 조사 결과는 한국 사회에 이미 상당한 규모의 ‘기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민 집단’이 형성되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4. 해당 주장들은 재생에너지와 온실가스 감축의 효과를 과도하게 단순화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재생에너지의 적용 가능성은 지형적 조건보다 정책·제도적 설계와 기술 선택에 의해 좌우되며, 한국 역시 다양한 형태의 재생에너지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일부 국가의 대규모 배출을 이유로 자국의 감축 노력을 무의미하다고 보는 주장은 국제적 감축 체계의 누적적·상호적 성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기후위기를 걱정한다는 거짓말? – 두 번의 조사, 두 번의 선거
<기후정치바람>이 2023년 12월 1일부터 27일까지, 전국 17개 시도에서 18세 이상 시민 1만 7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3.5%가 ‘기후 유권자’로 분류됐다(표본오차 ±0.8%p, 95% 신뢰수준). 이 조사는 ▲기후 관련 용어를 알고 있으며 ▲기후위기로 직·간접적인 영향을 체감하고 있고 ▲기후문제를 투표에서 중요하게 고려하겠다고 응답한 시민을 기후 유권자로 정의했다.5
2025년 4월 7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두 번째 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반복됐다. 전국 18세 이상 시민 4,482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36.0%가, 기후대응과 민주주의 가치를 연결해 인식하고 정책적 대응을 중시하는 ‘기후민주시민’6으로 나타났다(표본오차 ±1.5%p, 95% 신뢰수준).
5. 기후정치바람, 2024. 2., 『2023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 전국 보고서』.
6. 녹색전환연구소, 2025.06.11, [2025년 6월 전환소식] (http://igt.or.kr/view/1243)

2023, 2025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 결과 ⓒ기후정치바람
이를 실제 조사 시기의 유권자로 환산하면 그 규모는 더욱 분명해진다. 2023년 12월 기준 18세 이상 인구 약 4,424만 명을 적용할 경우, 잠재적 기후유권자는 최소 약 1,446만 명에서 최대 약 1,517만 명으로 추산된다. 또한 2025년 4월 기준 18세 이상 인구 약 4,437만 명을 기준으로 하면, 잠재적 기후민주시민은 약 1,531만 명에서 최대 약 1,664만 명에 이른다.
두 번의 조사 결과는 한국 사회에 이미 1,500만 명 안팎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시민이 기후위기 대응을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로 인식하고, 이를 정책과 투표 선택에서 고려할 의사가 있는 유권자 집단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이 거대한 집단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와 대통령 선거(대선)라는 두 번의 선거에서 유의미한 투표로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을까.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총선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 기준은 3% 이상의 정당 득표율이다. 2024년 4월 10일 치러진 제22대 총선에서 선거인 수는 44,280,011명, 투표자 수는 29,654,450명이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비례대표 후보 1인을 당선시키는 데 필요한 표는 889,634표였다.
제22대 총선에서 기후 의제를 전면에 내세운 정당은, 정의당과 녹색당의 선거연합인 녹색정의당7이었다. “기후를 살립니다”라는 슬로건은 기후문제를 투표 의사에 반영하겠다는 거대한 규모의 시민 인식과 어긋나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혹독한 실패였다. 녹색정의당은 정당 득표에서 609,313표(득표율 2.14%)에 머물며 비례대표 의석을 얻지 못했다. 지역구 선거 역시 당선자를 한 명도 내지 못한 채, 득표 총합이 107,029표(득표율 0.36%)에 그치며 원외 정당으로 밀려났다.
7. 한국 정당법 상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정의당을 플랫폼으로 해서 당명을 녹색정의당으로 바꾸고, 녹색당 후보 및 선거 인력들이 일시적으로 녹색당을 탈당하여 녹색정의당에 입당하는 형태했다.

기후유권자(추정치)와 제22대 총선 각 정당 득표수 비교 ⓒ녹색정치연구소
같은 상황은 대선에서도 반복됐다. 불법 내란의 여파 속에 치러진 2024년 제21대 대선에서, 다른 후보들보다 기후위기 대응과 사회적 약자 보호를 전면에 내세운 권영국 후보가 344,150표(득표율 0.98%)를 얻으며 4위에 그쳤다.

기후민주주의자(추정치)와 21대 대선 후보별 득표수 비교 ⓒ녹색정치연구소
두 번의 조사에서 기후유권자와 기후민주시민의 존재가 확인되었지만, 두 번의 선거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총선에서는 정당 득표율 3% 문턱에서 좌절했고, 대선에서는 득표율이 1%를 넘지 못한 것이다. 기후위기를 걱정한다고 말하는 시민들의 인식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선거라는 결정적 시점에서 투표라는 정치적 행위로 조직되지 못한 채 해체되어 버렸다.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 문제는 그 인식이 선거에서 정치적 선택과 집합적 투표 행위로 조직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것은 다수의 시민을 실제 정치권력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한국 기후정치의 한계를 드러낸다.
기후가 투표가 되려면 – ‘기후평화’를 욕망하도록 조직하기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시민의 응답은 거짓이 아니다. 상당수는 기후위기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며, 이를 투표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고려하겠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총선과 대선이라는 결정적 순간마다 이 인식이 실제 투표로 연결되지 못하는 현실은, 한국 정치가 이 다수를 조직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흔히 제기되는 해법은 “지역에서부터”, “풀뿌리를 강화해야 한다”, “현장 연대를 복원해야 한다”라는 주장들이다. 틀린 방향은 아니다. 그러나 왜 지역과 현장이 중요한지 설명이 부족하면, 이러한 해법은 쉽게 도덕적 구호로 소진된다. 지역과 현장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당위의 공간이 아니라, 욕망과 이해관계가 형성되고 충돌하며 반복적으로 조정되는 정치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욕망이 추상적 가치에 머무르지 않고 생활과 결합할 때, 그것은 정치권력으로 전환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파트 유권자’다. 이들은 설문조사 속 기후유권자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집값이라는 이해관계를 매개로 지역 공간에서 일상의 대화와 정보 교환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 그 이해관계를 반복적으로 확인하며 조용히 조직된다. 그 결과 형성된 욕망은 선거 국면에서 강하고 일관된 투표로 이어진다.

서울의 아파트 (사진: Unsplash의Na Inho)
현실의 정치는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과정이 아니라, 욕망과 이해관계를 조직하는 실천이다. 기후정치가 충분한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기후유권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후 문제를 대중적 욕망의 언어로 번역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과학적 경고와 도덕적 당위의 언어는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하는 데에는 유효했지만, 이를 유권자의 이해관계로 치환하는 정치적 상상력까지 제공하지는 못했다.
기후 문제가 주거 안정, 에너지 비용, 교통과 일자리, 안전 등 생활 문제로 구체화하지 않는 한, 선거 국면에서 기후는 뒷순위로 밀린다. 반대로 기후위기 대응이 삶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장기적 안정과 번영을 가능하게 할 때, 기후는 정치적 선택으로 이어진다. 잉글랜드–웨일스 녹색당이 지방선거에서 ‘기후’ 자체보다 생활 의제를 전면에 내세운 사례는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방선거에서 약진한 잉글랜드-웨일스 녹색당 (사진: BBC)
그렇다면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기후위기가 아닌 ‘기후평화’를 어떻게 욕망하게 할 것인가. 기후평화란 기후로 인해 삶이 붕괴하거나 불안정해지지 않고, 개인과 사회, 더 나아가 지구 생태계가 장기적 안정 속에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상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이미 존재하는 다수를 일상의 이해관계와 결합한 정치로 조직하는 기획이며, 그 과정을 통해 기후유권자를 ‘존재하는 다수’에서 ‘투표하는 다수’로 전환하는 것이다. ●
- 박제민 연구원(greenpolitics.kr@gmail.com)
기후위기라는 거짓말? 기후위기를 걱정한다는 거짓말?
[녹색정치리포트] 기후유권자의 존재와 부재: 기후는 왜 투표가 되지 못하는가
기후위기라는 거짓말? – 낡은 부정론의 부활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유럽 곳곳에서 극우정당의 약진함에 따라, 낡은 ‘기후위기 부정론’이 되살아나고 있다. 트럼프는 2025년 9월 24일 유엔(United Nations, UN) 총회 연설에서 “기후 위기는 세계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 Afd)의 알리스 바이델(Alice Weidel) 대표는 독일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두고 “점진적인 경제적 자살”이라고 비난하며 핵발전소 재가동을 요구했고, 베아트릭스 폰 슈토르히(Beatrix von Storch) 부대표는 “우리는 기후도, 전쟁도 관심 없다”라며 자국 우선주의에 따라 국제적인 기후협약을 무시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영국의 극우정당인 개혁영국당(Reform UK)의 나이절 패라지(Nigel Farage) 대표는 “넷제로1의 광기를 끝낼 시간”이라며 기후정책 반대운동을 브렉시트(Brexit)2와 같은 대중운동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고, 리처드 타이스(Richard Tais) 부대표는 “기후위기에 인간의 영향은 매우 적다”라고 주장했다.
1. 넷제로(Net-Zero): 온실가스의 배출량과 흡수량을 동일하게 만들어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개념이다.
2. 영국을 의미하는 Britain과 탈출을 의미하는 Exit의 합성어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한다. 현지시간 2016년 6월 23일, 영국은 국민투표를 통해 투표율 72.2%, 찬성률 51.9%로 유럽연합을 탈퇴했다.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알리스 바이델 독일 Afd 대표,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 (출처: google CCL image)
과학자들의 진술은 다르다. IPCC3의 제6차 보고서는 인간의 활동을 통해 배출된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를 초래했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Unequivocal)”라고 명시했다. 심지어 미국 연방정부가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국가기후평가(National Climate Assessment)’ 보고서도 “온실가스 배출을 통한 인간 활동이 지구 온난화를 명백히 초래했다”라고 결론짓고 있다. 기후위기를 둘러싼 논쟁에서 정치인의 선전을 들을지, 과학자의 판단을 따를지 결정하는 것은 절대 어렵지 않다.
3.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유엔 산하 국제기구로,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를 평가하고 영향 및 대응 방안에 대한 종합 보고서를 발간한다.
극우정치는 왜 기후위기를 부정하고 공격하는 것일까? 두말할 것 없이 자신들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서다.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에너지 가격 상승을 서민의 경제적 고통으로 치환하여 분노를 유발하고, 에너지전환 정책이 자국의 산업 경쟁력과 자국민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논리를 앞세워 지지층을 결집하는 것이다. 결국 기후위기를 엘리트들이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조작한 ‘사기’나 ‘광기’로 규정함으로써 대중들의 반엘리트 정서를 자극한다. 그 이면에는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화석연료 업계 및 자본과의 공고한 카르텔도 작동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서구의 기후부정론이 약간 변주한 형태로 나타난다. 한국의 지형에는 재생에너지가 맞지 않다거나, 한국이 아무리 온실가스를 줄여도 중국 때문에 소용이 없다는 주장 등이다. 기후위기를 정면으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지리적 적합성과 한계성을 부각하며 기후위기 대응을 가로막고 화석연료 체제를 지속시키겠다는 것이다.4 다행스럽게도 한국의 시민들은 이런 선전에 흔들리고 있지 않다. 여러 조사 결과는 한국 사회에 이미 상당한 규모의 ‘기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민 집단’이 형성되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4. 해당 주장들은 재생에너지와 온실가스 감축의 효과를 과도하게 단순화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재생에너지의 적용 가능성은 지형적 조건보다 정책·제도적 설계와 기술 선택에 의해 좌우되며, 한국 역시 다양한 형태의 재생에너지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일부 국가의 대규모 배출을 이유로 자국의 감축 노력을 무의미하다고 보는 주장은 국제적 감축 체계의 누적적·상호적 성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기후위기를 걱정한다는 거짓말? – 두 번의 조사, 두 번의 선거
<기후정치바람>이 2023년 12월 1일부터 27일까지, 전국 17개 시도에서 18세 이상 시민 1만 7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3.5%가 ‘기후 유권자’로 분류됐다(표본오차 ±0.8%p, 95% 신뢰수준). 이 조사는 ▲기후 관련 용어를 알고 있으며 ▲기후위기로 직·간접적인 영향을 체감하고 있고 ▲기후문제를 투표에서 중요하게 고려하겠다고 응답한 시민을 기후 유권자로 정의했다.5
2025년 4월 7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두 번째 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반복됐다. 전국 18세 이상 시민 4,482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36.0%가, 기후대응과 민주주의 가치를 연결해 인식하고 정책적 대응을 중시하는 ‘기후민주시민’6으로 나타났다(표본오차 ±1.5%p, 95% 신뢰수준).
5. 기후정치바람, 2024. 2., 『2023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 전국 보고서』.
6. 녹색전환연구소, 2025.06.11, [2025년 6월 전환소식] (http://igt.or.kr/view/1243)
2023, 2025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 결과 ⓒ기후정치바람
이를 실제 조사 시기의 유권자로 환산하면 그 규모는 더욱 분명해진다. 2023년 12월 기준 18세 이상 인구 약 4,424만 명을 적용할 경우, 잠재적 기후유권자는 최소 약 1,446만 명에서 최대 약 1,517만 명으로 추산된다. 또한 2025년 4월 기준 18세 이상 인구 약 4,437만 명을 기준으로 하면, 잠재적 기후민주시민은 약 1,531만 명에서 최대 약 1,664만 명에 이른다.
두 번의 조사 결과는 한국 사회에 이미 1,500만 명 안팎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시민이 기후위기 대응을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로 인식하고, 이를 정책과 투표 선택에서 고려할 의사가 있는 유권자 집단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이 거대한 집단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와 대통령 선거(대선)라는 두 번의 선거에서 유의미한 투표로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을까.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총선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 기준은 3% 이상의 정당 득표율이다. 2024년 4월 10일 치러진 제22대 총선에서 선거인 수는 44,280,011명, 투표자 수는 29,654,450명이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비례대표 후보 1인을 당선시키는 데 필요한 표는 889,634표였다.
제22대 총선에서 기후 의제를 전면에 내세운 정당은, 정의당과 녹색당의 선거연합인 녹색정의당7이었다. “기후를 살립니다”라는 슬로건은 기후문제를 투표 의사에 반영하겠다는 거대한 규모의 시민 인식과 어긋나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혹독한 실패였다. 녹색정의당은 정당 득표에서 609,313표(득표율 2.14%)에 머물며 비례대표 의석을 얻지 못했다. 지역구 선거 역시 당선자를 한 명도 내지 못한 채, 득표 총합이 107,029표(득표율 0.36%)에 그치며 원외 정당으로 밀려났다.
7. 한국 정당법 상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정의당을 플랫폼으로 해서 당명을 녹색정의당으로 바꾸고, 녹색당 후보 및 선거 인력들이 일시적으로 녹색당을 탈당하여 녹색정의당에 입당하는 형태했다.
기후유권자(추정치)와 제22대 총선 각 정당 득표수 비교 ⓒ녹색정치연구소
같은 상황은 대선에서도 반복됐다. 불법 내란의 여파 속에 치러진 2024년 제21대 대선에서, 다른 후보들보다 기후위기 대응과 사회적 약자 보호를 전면에 내세운 권영국 후보가 344,150표(득표율 0.98%)를 얻으며 4위에 그쳤다.
기후민주주의자(추정치)와 21대 대선 후보별 득표수 비교 ⓒ녹색정치연구소
두 번의 조사에서 기후유권자와 기후민주시민의 존재가 확인되었지만, 두 번의 선거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총선에서는 정당 득표율 3% 문턱에서 좌절했고, 대선에서는 득표율이 1%를 넘지 못한 것이다. 기후위기를 걱정한다고 말하는 시민들의 인식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선거라는 결정적 시점에서 투표라는 정치적 행위로 조직되지 못한 채 해체되어 버렸다.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 문제는 그 인식이 선거에서 정치적 선택과 집합적 투표 행위로 조직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것은 다수의 시민을 실제 정치권력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한국 기후정치의 한계를 드러낸다.
기후가 투표가 되려면 – ‘기후평화’를 욕망하도록 조직하기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시민의 응답은 거짓이 아니다. 상당수는 기후위기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며, 이를 투표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고려하겠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총선과 대선이라는 결정적 순간마다 이 인식이 실제 투표로 연결되지 못하는 현실은, 한국 정치가 이 다수를 조직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흔히 제기되는 해법은 “지역에서부터”, “풀뿌리를 강화해야 한다”, “현장 연대를 복원해야 한다”라는 주장들이다. 틀린 방향은 아니다. 그러나 왜 지역과 현장이 중요한지 설명이 부족하면, 이러한 해법은 쉽게 도덕적 구호로 소진된다. 지역과 현장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당위의 공간이 아니라, 욕망과 이해관계가 형성되고 충돌하며 반복적으로 조정되는 정치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욕망이 추상적 가치에 머무르지 않고 생활과 결합할 때, 그것은 정치권력으로 전환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파트 유권자’다. 이들은 설문조사 속 기후유권자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집값이라는 이해관계를 매개로 지역 공간에서 일상의 대화와 정보 교환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 그 이해관계를 반복적으로 확인하며 조용히 조직된다. 그 결과 형성된 욕망은 선거 국면에서 강하고 일관된 투표로 이어진다.
서울의 아파트 (사진: Unsplash의Na Inho)
현실의 정치는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과정이 아니라, 욕망과 이해관계를 조직하는 실천이다. 기후정치가 충분한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기후유권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후 문제를 대중적 욕망의 언어로 번역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과학적 경고와 도덕적 당위의 언어는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하는 데에는 유효했지만, 이를 유권자의 이해관계로 치환하는 정치적 상상력까지 제공하지는 못했다.
기후 문제가 주거 안정, 에너지 비용, 교통과 일자리, 안전 등 생활 문제로 구체화하지 않는 한, 선거 국면에서 기후는 뒷순위로 밀린다. 반대로 기후위기 대응이 삶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장기적 안정과 번영을 가능하게 할 때, 기후는 정치적 선택으로 이어진다. 잉글랜드–웨일스 녹색당이 지방선거에서 ‘기후’ 자체보다 생활 의제를 전면에 내세운 사례는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방선거에서 약진한 잉글랜드-웨일스 녹색당 (사진: BBC)
그렇다면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기후위기가 아닌 ‘기후평화’를 어떻게 욕망하게 할 것인가. 기후평화란 기후로 인해 삶이 붕괴하거나 불안정해지지 않고, 개인과 사회, 더 나아가 지구 생태계가 장기적 안정 속에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상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이미 존재하는 다수를 일상의 이해관계와 결합한 정치로 조직하는 기획이며, 그 과정을 통해 기후유권자를 ‘존재하는 다수’에서 ‘투표하는 다수’로 전환하는 것이다. ●
- 박제민 연구원(greenpolitics.kr@gmail.com)